1. 작품 관련 시대 간단 정리
1-1) 대략적 미국 상황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이 난다. 전쟁이 끝이 났음에도 귀환한 병사들의 일자리 부족, 다수의 폭동 등으로 미국은 혼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1919년에는 윌슨 대통령이 국제 연맹에 미국을 가입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공화당이 이를 계속해서 거부했기에 연맹에 가입하지 못했다. 이는 미국인의 일반적인 고립주의 사고방식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다. 또 미국 여성들은 긴 참정권 운동을 통해 참정권을 얻어 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연방 의원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20년부터 1921년에 있었던 불황 기간을 제외하고, 미국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에 비해 번영의 시기를 보냈다. 노동자 임금이나 농산물의 가격은 하락했지만 라디오, 영화, 자동차 및 화학 제품 등 새로운 산업과 제품이 발전했다. 19세기 펜실베니아 오일 러쉬로 시작된 텍사스의 석유 붐, 오클라호마, 캘리포니아 주 등 다른 지역에서 정점에 달했던 유전 발견의 파도에 이어, 미국은 증가하는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세계 최고의 석유 생산국이 되었다.
노동조합 활동은 전쟁 동안에 정부가 파업에 대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관대하게 다루어지고 있었지만, 그것도 1919년에 끝났다. 1920년, 최저 임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고용주는 절대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 이상을 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의 소득 성장이 멈췄다. 미국의 제조업은 전례 없을 정도의 효율을 높이고 생산적이고, 소비재를 생산해 내서 수요를 초과할 때가 많았다. 지난 10년간 많은 회사의 인수 합병이 일어나 100여개의 회사가 국내 산업 생산의 절반을 지배하게 되었다. 농부들은 점차 생산물 가격이 하락하는 위기를 느끼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 동안에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높게 유지했기 때문에 단기간의 호황에 열광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그런 통제 가격보다는 미국의 농업이 호황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이 불공평함은 지리적으로도 존재했다. 시골에서의 생활수준은 극적인 주택의 개량이나 도시 계획이 있던 도시 및 교외의 수준에 뒤처지게 되었다. 시골에서 자동차의 급속한 보급에 의해 거리의 문제가 줄어든 가까운 마을이나 도시로 인구가 유출되었다. 흑인은 차별을 피해 또한 소작농의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단으로 남부를 떠났다. 그들은 북부 산업 지역에서 큰 지역 사회를 구축했다.
모든 피고용자의 수입(인플레이션, 실업 및 노동 시간 단축을 계산에 넣어)은 1918년에서 1945년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났다. 이 호황은 위험한 정도까지 신용 대출의 확대에 반영되었다. 증권 시장의 경우 전례없이 높아져 있었다. 이는 결국 1929년 일어나는 대공황으로 이어졌으며 대공황에 일어난 증시 대폭락 후에 되돌아보면, 대출 한도액의 수준이 위험할 정도 높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흑인 사회에서 확대된 재즈 음악이 사회 전체에 퍼졌다. 댄스가 인기 있는 기분 전환의 수단이 되었다.
1-2) 당시 여성 인권
17,18세기 : 청교도 정신에 따라 영혼의 평등성을 믿었으나 여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 여성이 받는 교육은 남성을 기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장 자크 루소의 견해가 지배적인 시대였다. 이는 여성교육 기회의 박탈과 여성에 대한 각종 사회적 금기사항, 이중적 사회관습에 얽매인 여성행동규범의 생성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이후 : 1812년 최초로 여학생 교육기관인 '트로이 여학교(Troy Female Seminary)'가 설립되었다. 이어 여성들이 1820년대의 알콜중독 근절단체와 같은 도덕개혁단체에 참여하고, 1830년대의 노예제 폐지 운동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가면서 여성운동이 발전했다.
하지만 이후 대공황 때까지도 여성 차별, 특히 흑인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여성들의 근로여건이 좋아지는 등 차별이 완화되는 듯 했다. 하지만 종전 후에는 주부로 돌아오는 사회분위기가 지속되었다.
2. 작가 소개
2-1) 어니스트 헤밍웨이 [ Ernest Miller Hemingway ] ( 1899.7.21 ~ 1961.7.2 )
헤밍웨이는 1899년 7월 21일 시카고 교외의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렵 등 야외 스포츠를 좋아하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음악을 사랑하고 종교심이 돈독한 여성이었다. 이러한 부모의 성질이 그의 인생과 문학에 미묘한 영향을 주었다. 고교시절에는 풋볼 선수였으나,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때 쓰인 작품에도 후에 유명해진 그의 문체(文體)의 특징이 이미 나타나 있었다. 1917년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의 《스타 Star》지(紙) 기자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 의용병으로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이 되어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 중 다리에 중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 휴전이 되어 1919년 귀국하였다. 전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지의 특파원이 되어 다시 유럽에 건너가 각지를 시찰 여행하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였다. 파리에서 G.스타인, E.파운드 등과 친교를 맺으며 창작상의 많은 것을 배웠다.
1923년 초기작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詩) Three Stories and Ten Poems》를 출판하였고, 1924년 주로 청소년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 In Our Time》를 발표하였으며, 《봄의 분류(奔流) The Torrents of Spring》(1926)를 발표하고 이어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1926)를 발매했다. 이 때에 이르러 그의 명성은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파리와 에스파냐를 무대로 찰나적 · 향락적인 남녀들을 중심으로 전후(戰後)의 풍속을 묘사하여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의 대표작가로 지목되었다.
1928년 귀국, 같은 해 아버지의 권총자살 등 어려운 사건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 이듬해인 1929년 전쟁의 허무함과 고전적인 비련을 테마로 한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를 완성, 전쟁문학의 걸작으로서 국외에서도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에스파냐의 투우를 다룬 《오후의 죽음 Death in the Afternoon》(1932), 아프리카에서의 맹수사냥에다 문학론과 인생론을 교차시킨 에세이집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Green Hills of Africa》(1935)을 발표하였는데, 이들 두 작품에서는 그의 문학관 · 인생관을 직접 알 수 있다. 밀수입(密輸入)에 종사하는 어선의 선장을 주인공으로 한 다음 장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To Have and Have Not》(1937)는 당시 유행된 사회소설을 지향한 것이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사회소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1936년 에스파냐내란 발발과 함께 그는 공화정부군에 가담하여 활약했으며 그 체험에서 스파이 활동을 다룬 희곡 《제5열(第五列) The Fifth Column》(1938)를 탄생시켰다. 다시 1940년에는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미국 청년 로버트 조단을 주인공으로 한 그의 최대의 장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를 발표하며 《무기여 잘 있거라》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 작품 활동이 없다가 그 침묵을 깨고 발표한 《강을 건너 숲 속으로 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1950)는 예전의 소설의 재판(再版)이라 해서 좋지 못한 평을 얻었다. 하지만 다음 작품인 단편소설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1952)에서 대어(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했는데,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상을 받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집으로는 《우리들의 시대에》 외에 《남자들만의 세계 Men Without Women》(1927), 《승자(勝者)는 허무하다 Winner Take Nothing》(1932)가 있다. 후에 다른 작품들을 첨가하여 한 권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는 하드보일드 (hardboiled)풍의 걸작 《살인청부업자 The Killers》(1927), 표현기술의 정수를 구사한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 of Kilimanjaro》(1936) 등 미국문학의 고전(古典)으로 간주되는 명단편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를 오히려 단편작가로서 높이 평가하는 평론가들도 많이 있다.
1953년 아프리카 여행을 하던 헤밍웨이는 두 번이나 비행기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고, 이후 전지요양에 힘썼다. 그 후 1961년 7월 갑자기 엽총사고로 죽었는데, 자살로 추측된다. 사후에 《이동축제일(移動祝祭日)》(1964) 《만류(灣流)의 섬들》(1970) 등의 유고(遺稿)가 출판되었다. 그는 지성과 문명의 세계를 속임수로 보고, 가혹한 현실에 감연히 맞섰다가 패배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힘차게 묘사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두산백과)
2-2) 잃어버린 세대 (Lost Generation)
일반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잃어버린 세대, 상실세대(喪失世代), 길 잃은 세대 등 다양하게 불리기도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그의 작품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1926)의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라는 거트루드 스타인이 한 말을 인용한 데서 유명해졌는데, 오늘날에는 G. 스타인이 어떤 프랑스의 자동차수리공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청년 지식인들이 미국의 실업사회(實業社會)를 혐오하여 대거 파리에 건너가서 쾌락적이고 허무적인 생활을 보낸 사실로 보아서는 이 명칭이 헤밍웨이 작품 이후 유명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잃어버린 세대의 작가들은 다른 미국 작가들과 달리 경제적 위기를 이유로 새로운 인력의 유입을 거부하는 사회체제에 대해 절망을 느끼고 있다. 이들은 선배 세대에게는 능력 발휘의 기회를 빼앗겼다는 상실감과 동료 및 후배 세대와는 생존을 건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전쟁 후유증에 비유할 만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다. 또한 이 세대는 자신들이 물려받은 가치관이 더이상 전후세대와 연결되지 못했고, 하딩 대통령의 '정상 복귀' 정책 아래에서 절망적으로 편협하고, 물질주의에 물들고, 정서적으로 황폐해 보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신적 소외를 느끼기 때문에 길을 잃은 것이다.
이 세대의 작가로는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존 더스패서스, 커밍스, 포크너, 에즈라 파운드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결코 허무적이었던 것은 아니어서 1920년대 중반부터 의욕적이고도 우수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하였다. 또, 같은 세대의 비평가인 M.카울리는 《망명자(亡命者) 돌아오다》(1934)에서 ‘로스트 제너레이션’에 대하여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 1, 2번은 인터넷 검색으로 긁어온 것임.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개인적으로 검색을 더 해보는 것을 추천.
3. 작품 해석
직접 번역한 것이라 오역이 있을 수 있다. 필요하다면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정식 발매된 번역본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북으로 400원인가? 그 정도 하더라.
3-1) 감상이 들어간 간단 작품 해석
ㄱ. 흰 코끼리
작품 제목에도 나오고, 소녀가 계속해서 언급하는 흰 코끼리는 처음에는 다소 엉뚱한 단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글을 읽어나가다보면 흰 코끼리가 태아를 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인지할 수 있는 가장 큰 힌트는 흰 코끼리 자체의 상징성이다.
석가모니의 모친인 마야부인이 태몽으로 6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기에 불교에서 흰 코끼리는 굉장히 신성시되는 동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코끼리는 처치곤란한 물건을 뜻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버마나 태국, 캄보디아의 설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고대 국왕이 불편한 관계의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했던 것이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코끼리는 몸집도 크고 먹는 양도 많기에 사육에 굉장한 비용과 노력이 들었는데, 국왕이 선물한 코끼리가 죽게 되면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았기 때문에 열과 성을 다해 사육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흰 코끼리는 태아를 뜻하는데 이에 대한 남자와 소녀의 태도가 상이하다. 소녀는 아이가 남자와의 관계에 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이에 대한 마음을 쉽게 놓지 못한다. 남자가 말한 대로 낙태 수술에 대한 공포가 그 원인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계속 신경 쓰이고 마음에 걸린 이유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에 반해 남자는 아이에 대한 미련을 완벽하게 버렸다. 소녀가 언덕을 보며 흰 코끼리를 떠올릴 때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하고, 그에 대한 다른 대답을 할 때도 시큰둥한 태도를 보여준다.
ㄴ. 수술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이전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는 수술을 계속해서 'awfully simple operation'이라거나 'really not anything'이라는 표현 등을 사용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한다. 망설이고 있는 소녀에게 간단한 수술이라고 말하며 은근히(라고는 하지만 강제로 보이는) 요구하고 있다. 또한 수술만 하면 자신들은 그저 전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며 최대한 가볍게 생각하게 만드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흰 코끼리 얘기를 할 때 시큰둥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열성적으로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소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실제로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말을 덧붙이며 최종 결정과 책임을 소녀에게 미룬다.
그에 반해 소녀는 여전히 수술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성이 아무리 열정적으로 얘기해도 계속해서 망설인다. 남자와 달리 아이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Everything tastes of licorice. Esecially all the things you've waited so long for, like absinthe(모든 것이 다 감초 맛이 나요. 특히 오래 기다렸던 것들에서 말이에요, 압생트처럼)."이나 "That's all we do, isn't it ─ look at things and try new drinks?(그게 우리가 하는 전부잖아요, 안 그래요? 이것저것 보고 새로운 술 마셔보고?)" 같은 대사를 통해 소녀가 현재 상황이 힘들고 별로이며, 별 목적 없이 떠도는 삶에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남자와 소녀가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없다에 대한 설전을 벌이는 부분이나 소녀가 둘의 관계가 수술 이후에는 같지 않을 것이라 암시하는 부분들에서 나타난다.
ㄷ. 그림자
이 작품에서 완벽하게 대비되는 것을 찾자면 햇볕 아래서 빛나는 흰 코끼리를 닮은 언덕과 얼마 없는 그림자 속에 앉아있는 두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상징적인데 두 사람은 역에 도착하자마자 그림자 속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다지 시원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택했다. 그 속에서 둘은 계속 대화를 이어가다 소녀의 의심이 더욱 커지고 둘은 더이상 예전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 소녀는 그림자를 벗어나 햇볕 아래로 걸어간다. 그 햇볕 아래서 소녀는 둘은 더이상 예전 같은 수 없으며 세상을 가질 순 없다고 항변하지만 결국 남자의 부름에 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그 후 여자에게서 곧 기차가 도착한다는 것을 듣는다. 이제 진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소녀는 여자와 남자에게 그저 웃어보인다. 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보다는 당장의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탈피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결말 이후의 상황을 예측하게 하는데 개인적으로 소녀는 남자의 뜻대로 낙태를 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 이후에 둘이 계속해서 여행을 다니며 사랑을 했을지 그 때로 끝이 났을지는 모르겠지만 소녀는 낙태는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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